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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북아에서 부동항 획득은 러시아에는 생명선 확보와 같아서 어차피 조선에 접근해야 했다.
차준홍 기자 급기야 고종은 아관파천까지 단행했다.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다.
그래서 이미 점령한 우즈베키스탄·투르키스탄·타지키스탄·키르기스스탄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인도양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.오른쪽이 서도인데 그 사이에 고도가 있다.마침내 크림전쟁(1854~1856)으로 충돌했다.
2년 후인 1860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해 부동항을 확보했다.영국의 거문도 점령도 마찬가지 효과를 지녀 동북아 진출을 노리는 러시아에는 동양의 지브롤터와 같았다.
영국이 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벌인 최초의 전쟁이다.
‘아시아의 발칸반도가 된 조선거문도 고도의 거문초등학교.그런데 띵루창의 눈에 집집이 사서삼경이 있고 경전을 읽는 사람이 많아 이에 놀란 나머지 ‘큰 문(巨文)이란 이름이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.
그 결과 영흥만(원산만)과 제주도.그런데 이런 잔잔함과 달리 거문도는 19세기 말 국제정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.
오른쪽이 서도인데 그 사이에 고도가 있다.[사진 김정탁] 이런 상황인데도 조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.